민주노총 임원선거에 대한 입장
1. 직선제로 치러지는 민주노총 임원선거에 네 팀이 출마했다. 모두가 민주노총의 위기를 주장하면서 혁신과 연대, 투쟁을 위해 자신을 지지해 달라고 호소한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얼마나 썩어있는지, 그리고 민주노조운동이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를 굳이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여러 투쟁들이 민주노총의 전면적인 엄호와 투쟁 없이 고립되어 깨져나가고 있지만 활동가들과 조합원들은 민주노총에 별다른 기대감을 갖고 있지 않다. 바로 이 모습이 민주노총의 현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는 그 뿌리가 대단히 깊다. 관료주의의 늪에 빠져 있는 상층 지도부만이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노동조합에 퍼져 있는 노사협조주의, 조합주의가 민주노조운동을 갉아먹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상층 지도부 몇 사람을 바꾸는 것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아래로부터 수많은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떨쳐 일어서고, 또한 투쟁하는 노동자들 스스로가 살아있는 계급적 연대망을 건설하는 주체로 나서야 실현될 수 있다. 우리는 조합주의자들의 권력욕, 상층지향성, 단기적 시야가 조합원들의 눈과 귀를 가리기 쉬운 선거시기일수록 아래로부터의 대중적 실천에 전력을 쏟아야만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을 힘주어 강조한다.
2. 처음으로 치러지는 직접 선거지만 현재까지는 간선제와 크게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평조합원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기보다는 상층 중심의 정파연합으로 후보가 꾸려지는 모습은 변함이 없다. 대표적으로 전재환 후보조가 이른바 중앙파와 우파의 연합으로 구성되었는데 그동안 민주노총 지도부를 맡아오며 민주노총을 퇴보시킨 장본인들이다. 그동안 자신들의 활동에 대한 진지한 반성도 없이 ‘통합지도부’라는 이름으로 출마했다. 다른 팀들도 민주노조운동과 자신들의 활동에 대한 진지한 평가조차 없이 급조된 공약과 슬로건만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줄곧 상층관료로서 활동하면서 대중적 투쟁을 실질적으로 이끈 경험이 없는 후보들이 앞으로 터져 나올 수 있는 대중의 역동적인 투쟁의지를 대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혁신의 주체가 아니라 혁신의 대상일 뿐이다.
3. 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이른바 좌파 후보로 나선 한상균 후보조의 선거투쟁본부에 결합하지 않았다. 한상균 후보는 쌍용차 77일 점거파업을 이끌었고 출소 후에도 해고투쟁의 전면에 섰다. 처절한 투쟁의 과정에서 굽힘 없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개인을 판단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한상균 후보를 조직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노동전선’의 정치적, 조직적 한계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길게 얘기하지 않더라도 여러 단사와 산별노조에서 노동전선과 연관된 이른바 현장파 집행부가 보여준 수많은 약점들을 경험했다. 때로는 우파에 비해 건강성과 전투성을 유지하기도 했지만 결국 전투적 조합주의 벽을 뚫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었다. 특히나 노동전선 집행부라는 현 금속노조 집행부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에선 불행하게도 희망을 발견할 수 없다. 금속노조는 지난 현대차비정규직 아산, 전주 집행부와 현대차 지부집행부가 만든 8.18쓰레기 합의안, 즉 불법파견 투쟁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신규채용을 받아들인 그 합의안에 대해서 폐기를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고 있지 않다가 결국 인정해 주었다. 또한 구미 스타케미컬 어용지회의 파렴치한 민주노조파괴 행위에 대해서도 사실상 방관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투쟁과정에선 밀실교섭이 이뤄졌다. 이러한 행동들은 민주노조운동의 후퇴를 가속화시키는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퇴행을 막으려면 이러한 행동과 근본적으로 단절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동안 노동전선의 활동에서 그러한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더 근본적인 측면이 있다. 그것은 명확한 정치,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확고한 대중적 지지와 영향력을 갖춘 세력만이 노동조합 지도부를 제대로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만 대중적 힘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책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화려한 말과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단위사업장에서도 그러한데 65만 명이 넘은 거대한 대중조직인 민주노총에서는 말할 나위도 없다. 한 마디로 실력이 없기 때문에 기대했던 대중에게 또 다른 실망과 환멸을 안겨주는 사태가 발생한다. 결국 더 노사협조주의와 개량적인 세력에게 노동조합의 지도권을 넘겨주게 된다. 이른바 좌파가 반복해 온 이 비극을 또다시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아래로부터의 실천에 혼신의 힘을 집중하면서 그 실천이 만들어낸 영향력에 비례해서, 위로부터의 지도력 형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노동전선과 한상균 선본에 결합한 세력들이 그런 원칙과 과정을 부정하거나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선 진정한 대안을 건설할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한상균 선본에 결합하지 않은 중요한 이유다.
4. 민주노총의 진정한 혁신을 위해선 누구의 당선보다, 폭넓은 단결과 살아 있는 연대투쟁을 만들어내는 것이 몇 백배 더 중요하다. ‘단사, 지역, 업종, 산업’의 부문주의 정신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는 하나’라는 정신으로 미조직노동자를 포함하여 노동자계급의 전체의 힘을 끌어올리는 것이 몇 백배 더 중요하다. 이것을 전제로, 이것을 잊지 않은 채로 우리는 한상균 후보조(기호2번)에 표를 던지자고 주장한다.
한상균 후보가 현장의 투쟁지도부 역할을 해낸 과정을 보았을 때, 그리고 투쟁하는 노동자들과의 결합력이 다른 후보에 비해 높은 것을 고려할 때 대중의 투쟁의지를 더 잘 대변할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한상균 후보조가 제기하고 있는 노동자살리기 총파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이 하나로 단결해서 싸우지 않으면 공황의 압력 아래 총공세를 퍼붓는 자본과 정부를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아직 방향에 대해서 공감할 뿐이다.
한상균 후보조는 “2015년 노동자살리기 총파업”을 얘기하고 있는데, 지금 필요한 것은 그런 선언과 일정이라기보다는 비정규직 투쟁과 각 부분, 각 지역의 투쟁에서 공동투쟁, 공동파업의 물결을 확산시키고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된 노동운동 주위에 결집시키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노력으로 흩어져 있는 전선을 하나로 모아나가야 2015년이든, 2016년이든 기회가 왔을 때 총파업의 불길을 지필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총파업은 지도자의 선언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상균 후보가 아니라 그 어떤 후보라도 선언으로는 총파업을 탄생시킬 수 없다. 명실상부한 총파업은 아래로부터 거세게 터져 나오는 대중적 투쟁의 강력한 물줄기를 통해서만 길이 열리고 비로소 일정에 오를 수 있다. 지도자들의 선포에 의해 총파업이 개시되는 경우에도, 그것은 하나의 신호탄 이상은 아니다. 공장과 사무실을 멈추는 강력한 총파업은 오직 아래로부터 분출하는 노동대중의 에너지, 자신감, 연대성, 전투성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실천을 철저하게 대중에게 맞추며 평범한 조합원들을 민주노총의 주인으로 만들고 단결과 연대투쟁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핵심적 과제다.
5. 자본과 정부의 거센 탄압, 그리고 공황의 파괴적 영향력이 노동자를 덮치고 있다. 쇠퇴기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노동조합 앞에 ‘사회혁명으로 전진할 것이냐 아니면 자본주의 체제 내에 머물 것이냐’라는 절대 도망칠 수 없는 선택의 문제가 놓여 있다. 노동조합은 노동해방의 방향으로 진군하거나 아니면 개량적이고 노사협조주의적인 무기력한 노동조합으로 퇴화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조운동이 노동해방의 전망으로 전진하지 못하면서 민주노총은 전체 노동자의 구심으로서의 의미를 잃고 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위대한 과제 역시 혁명적인 노동자당 건설이 아니라 선거주의 개량주의정당으로 후퇴했다. 이제는 자본가계급으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은커녕 자본가정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게 손을 벌리는 일이 흔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 모든 후퇴의 뿌리에는 자본주의를 약간 손질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믿는 개량주의가 놓여 있다. 이 개량주의가 지금의 모습을 잉태한 어머니다. 이 개량주의의 영향력은 쉽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다시 일어서고 있다. 다행히도 노동운동의 진정한 재건과 전진을 위해 실천하겠다는 결의를 갖고 있는 활동가들이 있다. 실제로 현장 밑바닥에서 최선을 다해 전선을 지키고 있는 동지들이 있다. 또한 폭풍우처럼 쏟아지는 억압과 착취에 맞서 처절하게 투쟁하고 있는 현장노동자들이 있다. 새로운 대안은 오직 현장 밑바닥에서부터 대중의 힘을 조직해 치고 올라오는 활동가들과 평조합원의 힘에 의해서만 형성될 수 있다.
‘위’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굳건한 발걸음을 내딛고, 이 ‘아래’로부터 만들어낸 실천활동의 성과만큼 대중과 함께 ‘위’로 뻗어나가야 한다. 각각의 세력들은 실천과 투쟁에 입각한 진정한 성과들을 만들어내고, 이 성과들에 입각해 자신을 검증하고 평가하면서, 대중적 진정성을 입증해 보여야 한다. 이것을 통해 대중과 지도자들 사이의 진정한 신뢰를 재탄생시켜야 한다.
우리 역시 이러한 측면에서 너무나 많이 부족하다. 우리 스스로 조합주의, 개량주의, 관료주의에 맞서 싸우고 아래로부터 투쟁과 연대를 건설하는 평조합원운동을 강화하기 위해 분투할 것이다. 앞으로도 가능한 모든 영역에서 정치총파업과 민주노총의 전투적 재편을 위해 헌신하는 선진투사와 평조합원들과 함께 전진할 것이다.
2014년 11월 19일
혁명적노동자당건설 현장투쟁위원회(노건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