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이 무너진 자리에 종파의 독버섯만 자란다!>. 헌신적인 활동으로 이름높은 민주노총 김진숙지도위원의 말이다. 종파·패권주의의 폐단이 비단 어제오늘일이 아니지만 그 심각성은 <독버섯>에 비유될 정도이다. 노동자정치조직은 본래임무인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교육과 조직, 실천을 담당하는 역사적 사명을 부여받고 생겨난 조직이다. 이러한 노동자정치조직은 그 역사적·실천적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오늘에 이르러 종파·패권주의의 온상으로 비난받고 있다. 각 정파조직은 공조직을 장악하고 타고앉아 그 위에 군림하는 종파·패권주의의 폐단으로 민주노총은 그 체계와 질서가 마비될 지경이다. 또 기존의 정파조직은 변질되어 노동조합선거운동조직으로 전락한지 오래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정파간의 갈등과 탈선은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실제 2012년 7월27일, 25년역사의 만도노조가 한순간에 와해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기업이 민주노조말살책동을 치밀하게 준비한 것이 노조가 와해되는 원인이었겠지만 주체적인 입장에서 평가하자면 그 이유는 바로 <정파> 때문이다. 노동자정치조직의 본래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선거조직으로 전락하여버린 각 정파들은 서로 헐뜯고 할퀸 상처만 남아 더이상 동지애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선거승리를 위하여서 향우회든 친목계든 가리지 않고 자파조직에 끌어들여 민주노조운동과 무관한 사람이 노조간부가 되니 운동이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또 종파·패권주의의 후과는 최근 복수노조시대에 더 첨예하여져 민주노조끼리 복수노조갈등을 빚는데까지 발전하였다. <충북지역노조>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종파·패권문제로 타지역과 갈등을 빚었던 <충북지역노조>가 결국 일반노협(전국지역업종일반노동조합협의회)운영위의 구두경고를 받자 일반노협을 탈퇴하였다. 그리고 민주일반연맹에 가입하였다가 또 종파·패권문제로 연맹에서 제명되고, 다시 전남지역본부에 직가입하였다. 결국 민주노총의 규약위반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어 민주노총의 조직질서체계를 교란시키고 무너지게 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다보니 <산별>, <지역>체계라는 정연한 양대체계는 온데간데없고 정파적 이해관계와 몸집불리기에 따라 노조들이 줄을 서는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종파·패권세력의 망동은 <학교비정규직>조직사업에서 최절정에 이르렀다. 위에 언급한 <공공비정규노동조합>이나 <학교비정규직>조직사업에서 패권을 부린 그 정파는 패권적인 당사업으로 통합진보당을 파괴시킨 특정정파이다. 그 정파는 노조조직사업에서도 패권을 부린 것으로 여전히 민주노총내에서 큰문제가 되고 있다. 종파·패권주의의 문제는 각 단위사업장에서, 민주노총의 조직사업과 운영에서 심각하게 나타나 민주노총대의원대회에서 벌어진 몰상식적인 폭력사태에서부터 단위사업장을 비롯한 각 지역본부와 산별노조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선거파행들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열거하기에 지면이 너무 부족하다.
종파·패권주의는 나름의 질서를 잡아 패거리를 형성한다. 그들의 질서에 순응하면 일정몫을 떼어주는 은혜를 베풀지만, 패거리문화를 비판하는 날에는 타도의 대상이 된다. 부문별로 지역별로, 혹은 섞여있는 것처럼 보이나 이들은 각자의 구역이 있고 침범하지 않는다. 간혹 그걸 침범하는 때에는 사달이 나기도 하지만 종파·패권세력간의 문제라면 적당히 봉합된다. 그 세력에 순응하지 않는 집단이라면 합종연횡을 통한 타도대상이 된다. 그들은 과학적인 진리와 진실, 민주노조의 지향을 활동의 기준으로 하지않고 <다수결>을 판단기준으로 하고 원칙으로 삼는다. 최근 총연맹에서 폭언·폭력사건이 벌어졌다. 놀랍게도 폭언·폭력을 행사한 이는 사무부총장 한석호와 사무총국성원 조경석이었다. 조합원 중 1명이 그 사실을 알고 총연맹에 징계결의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징계를 제기한지 두달이 지나도록 총연맹은 어떠한 조치도 하지않고 폭언·폭력사태의 가해자인 한석호와 조경석은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 징계를 제기한 조합원은 직·간접적인 외압에 시달리고 있다. 징계요청을 철회하지 않으면 후회할 일이 생길 거라고. 폭언·폭력을 비호하고 두둔하는 모습은 패거리문화의 전형이다.
민주노총에서 일하는 이들을 보편적으로 <활동가>라고 한다. 간부, 운동가, 혁명가 등 다른 이름으로도 명명되겠지만 직장인으로 불리기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에도 엄연히 직장인이 존재한다. 관료화되고 관성화된 민주노총의 조직문화는 진보단체에서 일하고 있을 뿐인 월급쟁이직장인을 양성한다. 직장인 중에는 <노동해방>의 큰뜻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매너리즘에 빠져 퇴색된 경우도 있고 비정규직860만시대에 정년까지 보장된 이만한 직장도 없다고 여겨 배겨있는 이도 있을 것이다. 천하태평, 무사안일주의의 직장인들과 종파패권주의자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 민주노총혁신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집행부가 새로 꾸려진 단위노조일꾼을 만난 지역본부간부의 대화를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요지는 새롭게 집행부가 선출되었으면 본부에 찾아와서 본부장님한테 인사하라는 거다. 그 지시를 본부장이 요구하였는지, 간부가 알아서 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관료화된 민주노총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봉건시대때 황제를 알현하며 인접국의 왕들이 사대의 예를 다하는 방식이 민주노조의 운동방식으로 되어선 안된다. 응당 본부장이나 지역본부간부들이 현장에 찾아가서 그들을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자료준비핑계, 교육준비핑계로 웹서핑을 하며 앉아있거나 기자회견일정, 집회일정에 따라 왔다갔다하는 이른바 <광을 파는> 이들에게 직장인이외에 어떤 표현이 어울리겠는가.
관료화되고 관성화된 직장인도 문제지만 일부활동가들의 경우 공조직의 직함은 대외용일 뿐인 경우도 있다. 공조직의 직함은 말그대로 공식적인 행사를 할 때 사용하거나, 월급을 받을 때 사용할 뿐이다. 활동시간의 대부분은 자기정파일을 하면서 보낸다. 심지어 정파일을 하느라 공조직의 역할을 방기하거나 공조직과 엇서기도 한다. 이런 <정파짓>을 통제하는 구조따윈 없다. 알아서 움직이고, 따져묻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 되었고 오직 뒤에서 서로가 서로를 험담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