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충격 시달리다 자살 선택… “더 이상 방치하면 안돼”
지난달 11일 코레일 용산승무사업소 소속 기관사 박모씨(48)는 서울 전철 1호선 남영역에서 다가오는 전동차를 향해 몸을 던졌다. 23일에는 구로승무사업소 소속 기관사 최모씨(46)가 자신이 살던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해 숨졌다. 올해 들어서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기관사가 3명이다.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대체 무엇일까.
1988년 기관사가 된 박씨는 10년 만에 악몽 같은 일을 겪었다. 1998년 열차를 몰고 서울에서 출발한 박씨는 부산역 도착 직전 선로 위에 엎드려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그러나 멈출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은 열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졌다. 박씨는 밀려드는 공포감에 온몸을 떨었다. 그러나 회사 측은 그에게 아무런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다.
평소 쾌활했던 박씨는 말수가 적어지고 사람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는 2005년 “이곳이 잘 맞지 않는다”면서 열차 대신 전철을 운전하는 승무사업소로 보직을 옮겼다. 그러나 기관사와 부기관사가 함께 일하는 철도에서 혼자 전동차를 모는 전철로 옮기고 나서는 증세가 더 심해졌다. 동료들이 모여 있을 때마다 혼자 구석에 쪼그려 앉아 담배만 연달아 피우는 일이 잦았다.
2009년 원래 일했던 용산승무사업소로 돌아왔지만 곧바로 두 달을 입원했다. 극심한 우울증 탓이었다. 하지만 일을 그만두게 될까봐 회사에는 다른 핑계를 대고 숨겼다. 운전대만 잡으면 이상한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 때문에 온몸이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박씨는 의사에게 “운전을 하기가 힘들다. 환청이 들린다.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박씨는 10여년 전 사고의 상처를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그는 지난달 11일 아침 “명예퇴직금이 나올 테니 그 돈으로 아이들을 잘 키워달라”는 짤막한 유서를 남긴 채 집을 나섰다. 서울역 코레일 서울본부로 가서 명예퇴직을 신청한 박씨는 1호선 전철을 타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남영역으로 간다. 갈게. 잘 있어.”
깜짝 놀란 부인은 박씨의 동료에게 연락했다. 동료들이 허겁지겁 남영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열차 운행이 멈춰 있었다. 박씨는 선로에 투신한 뒤였다. 이번에 사고가 난 전동차의 기관사도 병가를 낸 채 현재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달 23일 집에서 투신한 최씨도 1998년 사망사고를 경험한 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에 시달려왔다. 그는 지난 1월에는 열차 정지위치를 200m 지나치는 사고를 낸 뒤 징계까지 받으며 우울증 증세가 심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3월에는 공황장애(특별한 이유 없이 극도의 공포감에 사로잡히는 정신질환)에 시달리던 지하철 기관사 이모씨(43)가 지하철 5호선 왕십리역에서 열차에 뛰어들어 사망했다.
사망사고를 겪은 기관사들은 엄청난 정신적 충격에 시달리지만 그동안 대책은 전무했다. 3일간의 위로휴가를 주는 게 전부다. 이들은 휴가가 끝난 뒤 동료 기관사들이 ‘손 씻는 의식’이라며 사주는 술을 마시고 다시 열차를 몰아야 했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싶어도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 인사상 불이익을 받게 될까봐 숨겨왔다.
가톨릭대병원 산업의학과가 2007년 서울도시철도공사 소속 기관사 961명 중 836명을 건강검진한 결과 사상사고를 경험한 기관사들은 일반 기관사에 비해 트라우마에 걸릴 확률이 13배나 높았다.
코레일 청량리승무사업소 소속 기관사 박상현씨(42·사진)는 사망사고를 두 번이나 경험했다. 마지막 사고를 겪은 지 13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당시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열차가 역에 진입할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박씨는 8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기관사들이 평생 한두 번은 사망사고를 겪고 이로 인한 고통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그는 사망사고로 정신적 고통을 안고 살다 지난달 11일 스스로 열차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은 동료 기관사 박씨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고 했다. 그는 “고인이 얼마나 힘들어했을지 공감이 된다”며 “아무런 죄도 없는 고인이 끝내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씨는 사망사고가 났던 1999년 9월 어느 날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고 했다. 당시 시간은 오후 6시쯤.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날은 어둑어둑했다. 박씨가 운전하는 열차는 춘천을 출발해 청량리로 향하고 있었다. 청평역에 조금 못 미쳐 열차가 왼쪽 커브길로 접어드는 순간 어둠 속에서 철로에 서 있던 사람의 형체가 눈부신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 나타났다.
박씨는 “급히 비상제동을 걸었지만 눈앞에 있던 사람은 ‘텅’ 소리와 함께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다”고 말했다. 찰나의 일이었다. 박씨는 부기관사·승무원들과 함께 열차에서 내려 시신을 찾았다. 기차 뒤쪽으로 100m 정도 걸어가자 습기와 함께 피비린내가 물씬 올라왔다. 어둠 속에서 발견된 시신은 처참한 상태였다. 그는 “ ‘흩어진 시신을 찾겠다’며 미친 듯이 근처 도랑을 헤집는 부기관사를 간신히 달래 다시 기차를 운전해 청량리역으로 겨우 돌아왔다”고 말했다. 목이 등쪽으로 꺾여 머리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는 사실은 나중에 경찰에게 들었다.
그는 부기관사 시절이던 1997년에도 사망사고를 겪었다. 철로에 교복 차림의 여학생이 누워 있었다. 비상제동 후에도 기차가 속수무책으로 여학생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박씨는 죽음 직전의 여학생이 자신을 쳐다보는 모습을 봤다. 박씨는 “아직도 누운 채 다가오는 열차를 바라보던 여학생의 눈빛이 가끔 떠오른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가 난 날 동료 기관사들과 함께 술을 잔뜩 마시고 사무실에서 잠을 잔 후 다음날 다시 운행을 했다”며 “심리상담이나 정신과 치료라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사고 후유증은 오래갔다. 그는 “사고가 난 뒤로 세상이 캄캄해 보였다”며 “말수가 줄고 웃음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갑자기 욕설도 늘었다. 가족들은 영문을 몰라했다. 그는 “ ‘최종 책임자는 나’라는 생각에 자꾸만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그는 “ ‘뛰어든 사람 잘못이지 내 잘못이냐’라고 일부러 아무 일 아닌 척도 해봤지만 마음의 고통이 잦아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요즘도 플랫폼에 들어갈 때 사람이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와 있으면 마음이 불안하다고 했다. 그는 “부딪치지 않을 거리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 옆을 지나갈 때는 계속 기적을 울린다”고 말했다. 또 “아이들이 부모 손을 안 잡고 있어도 마음이 불안해져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온다”고도 했다.
박씨는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는 동료들이 많다”며 “그러나 그들이나 나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살한 동료 기관사에 대해 “마음의 상처가 너무 깊다 보니 주변에 자신의 고통에 대해 제대로 얘기를 못 꺼낸 것 같다”며 “우리의 말 못하는 상처를 치유해줄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열차 사상사고를 경험한 기관사들은 공황장애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 정신질환을 겪을 위험성이 높다”며 “체계적인 정신과 치료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전쟁이나 자연재해, 사고 등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사람이 계속적인 고통을 느끼는 정신질환의 일종이다. 공황장애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특정 상황에서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질환을 말한다.
고려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교실 이헌정 교수는 “끔찍한 사망 장면을 목격하고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 자체가 정신적으로 엄청난 충격이다. 그 기억이 머릿속에 남아 마음을 괴롭히고, 당시의 경험을 계속 반복해 느끼며 불안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자살 상황을 직접 목격한 기관사의 심적 고통은 더 심각하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진표 교수는 “자살하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고통을 죽음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학습효과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마음이 불안하면 일상생활이 힘들어지고 직장 내 인간관계도 파괴되기 쉽다”고 말했다. 연세대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강지인 교수는 “불안은 일의 효율성과 상황대처 능력을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정신적 고통을 겪는 기관사가 운전하는 열차가 사고 위험이 높을 수 있다는 얘기다.
강 교수는 “공황장애나 공포증이 심한 기관사의 경우 회사에서 업무를 순환배치시켜주고 적극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한 달간 6명이 달리는 전동차에 뛰어들어 죽거나 다쳤다. 사고가 난 곳은 기관사 박모씨가 투신한 남영역을 비롯해 월계·개봉·부개·노량진역 등 경인선 전철 구간과 분당선 태평역 등이다. 이들 역은 모두 코레일이 운영하는 구간이다. 또 플랫폼에 안전장치인 스크린도어가 없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최근 철도 자살사고는 대부분이 스크린도어가 설치돼 있지 않은 국철 구간에서 발생하고 있다. 스크린도어 설치가 완료된 서울메트로나 서울도시철도공사 구간은 자살사고가 급감했다. 스크린도어가 자살사고 예방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셈이다. 기관사들도 “스크린도어가 없는 역은 진입할 때마다 두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전국의 철로에 뛰어들어 숨진 사람은 모두 61명이다. 이 중 스크린도어 설치율이 낮은 코레일 관리 구간에서 자살한 사람은 53명으로 전체의 87%에 달한다. 2009년 전국 철로의 사망사고 62건 중 코레일 구간의 사고 비율이 절반(27건)에도 못 미친 것을 감안하면 최근 들어 코레일 구간의 사고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코레일이 관리하는 국철 구간에는 203개 역 중 불과 45개에만 스크린도어가 설치돼 있다.
반면 전 역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 구간에서는 각 1건의 사망사고만 발생했다.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도 스크린도어가 완비되기 이전인 2009년에는 자살사고가 각각 16건과 11건이었다. 스크린도어 설치 이후 사고가 급감한 것이다.
2009년 모든 역에 스크린도어 설치가 완료된 서울도시철도공사 노조 관계자는 “스크린도어 설치 후 사상사고에 대한 불안감이 훨씬 줄었다”고 말했다.
국토해양부는 예산 탓을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스크린도어를 설치하는 데 예산이 한정돼 있어 순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올해 스크린도어를 설치할 역사는 4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