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통폐합 후퇴..추진력 관건
(서울=연합뉴스) 정준영 기자 = 정부가 11일 41개 공기업의 민영화, 통폐합 등 1차 공공기관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신이 내린 직장'으로 통하는 공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됐다.
이날 발표에서는 305개 공공기관과
대우조선해양,
하이닉스 등 14개 공적자금투입기관 등 모두 319개 `선진화' 대상 중에 먼저 준비된 41개사의 개혁 방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부는 이달 말 2차, 9월 초중순 3차 공공기관 개혁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정부 출범 초기의 '개혁 밑그림'에서 후퇴한데다 공기업 사장 인사가 정권 주변에 대한 '보은 인사' '나눠먹기' 등의 논란을 빚으면서 향후 공기업 개혁이 강도높게 추진될 수 있을 지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 개혁의 강도.시기 후퇴
공기업 개혁은
이명박 정부의 핵심과제다. 실제 지난해 대선 후보 시절 공약집에서도 공공분야의 비효율성을 지적하고 "감시와 견제 부족으로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며 민간과 경쟁관계에 있거나 설립목적을 상실한 공기업부터 단계적으로 민영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례로 대형 35개 공공기관에 대한 조세연구원의 조사결과, 2002-2007년 1인당 부가가치는 연평균 1.8% 늘었지만 인건비는 6.6%나 증가하는 등 방만경영이 문제시되고 일부는 민간과의 경쟁으로 민간경제 발전을 막는다는 평가도 나왔다.
또 참여정부 기간에는 45개 기관의 신설 등에 따라 인력 4만명(225), 예산 88조원(43%)이 각각 증가하면서 현재 공적자금 투입기관을 제외한 공공기관 305개의 올해 예산이 338조원을 넘고 인력도 25만9천명까지 불어났다.
이런 상황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공기업 개혁을 위한 드라이브를 걸었고 지난 5월말께 청와대 주도로 개혁안이 일괄 발표될 것으로 전망됐다.
실제 초기에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실이 키를 잡았을 때만 해도 한국가스공사에 대해 경쟁 도입 후 민영화 방안이 거론되는 등 60∼70개 가량의 공기업이 민영화 대상으로 떠올랐고 공공부문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했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사태를 놓고 거세게 일어난 `촛불 민심'에 놀라 그 내용이 후퇴하고 발표 시기도 늦춰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민영화'가 핵심으로 받아들여지던 초기와는 달리 지난 6월부터는 `선진화'라는 포괄적이고 순화된 용어가 등장했다. 정부는 지난 달 17일에는 공기업 개혁을 청와대 주도에서 소관부처별로 추진하겠다는 원칙을 밝히기도 했다.
이는 일괄 발표와 추진을 통한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부처별로 분산해 개혁의 추진동력을 이어나가겠다는 의미로 해석할수도 있지만 당초 청와대에서 주도적으로 공기업 개혁을 몰아붙였던 것과 비교하면 힘이 크게 약화된 모습이다.
이날 발표만 봐도 선진화라는 용어 때문에 대상기관의 규모는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부실해졌다는 지적이다. 관심사인 민영화 대상도 애초 60개 이상으로 전망됐지만 이날 발표에서는 27개에 그쳤다.
그나마 27개 중에서도 산업은행이나 공적자금투입기관 14곳 등은 이미 민영화 방침이 정해진 곳들이었고 상대적으로 새롭게 여겨질 만한 곳도 뉴서울CC와 한국자산신탁, 한국토지신탁, 건설관리공사, 건설관리공사 정도여서 공기업 개혁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날 발표에서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의 경우 통합 방침만 재확인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이 발표문에 빠졌다. 정부는 주공과 토공을 먼저 각각 진주혁신도시와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하는 절차를 밟고 통합법인의 사업부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중이지만 노조와 지방자치단체의 반발에 밀린 어정쩡한 고육책이라는 비판이 많다.
◇ 노조 반발 속 추진동력이 관건
정부는 곧 2-3단계를 포함한 나머지 공공기관에 대한 개혁안을 공기업선진화특별위원회에서 확정할 예정이지만 이날 1차 발표에 대한 국민 여론이나 노조, 지방자치단체의 움직임이 주요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번 발표가 상대적으로 정책판단이 쉬운 기관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1차 발표의 내용을 둘러싼 여론의 향배에 따라 나머지 기관의 개혁안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실제 1차 발표에는 당연히 매각돼야 할 공적자금 투입기관 14곳이 들어있다는 점에서 숫자에 급급한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왔다.
김동렬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1차 민영화 대상으로 언급된 공기업들을 보면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공공기관을 새롭게 꺼내 포장한 것인데 `보여주기식' 민영화"라고 꼬집은 뒤 "공기업 개혁이 국정 어젠다에서 밀리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2단계, 3단계 방안도 크게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따라서 1차 개혁안에 대해 국민 여론이 미흡하다는 쪽으로 기울 경우 민영화나 통폐합의 수술대 위에 오르는 곳이 더 많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감사원과 검찰 등 사정기관의 수사로 방만경영과 비리가 사회 문제로 부상한 상황에서 공공부문에 대한 대수술이 이뤄져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반면 이번 발표로 노조의 반발이 가시화되고 공공기관의 지방혁신도시 이전과 맞물려 지자체의 반발이 본격화할 경우 정부의 개혁안이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2차 발표에서는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용보증기금 등 통폐합 기관이 다수 포함될 예정이고 3차 발표에서는 개혁방안에 이견이 있는 기관이 주요 대상이어서 이해당사자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하며 실행에 옮길지 주목된다.
이와 관련, 민영화 기관은 고용승계를 원칙으로 하고 통폐합에 따라 인력조정이 불가피한 경우에도 명예.희망퇴직제와, 전환배치, 전직 등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를 통해 노동계의 반발을 달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더욱이 최근 잇따른 공공기관장 인사가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할 리더십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는 "공기업 개혁은 깨끗하고 검증된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하고 그 CEO가 스스로의 문제를 도려내는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며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취지에는 공감할 수 있으나 이 같은 인사 문제로 발목이 잡힐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8월말까지 우리금융지주, 대우조선해양, 쌍용건설 등 공적자금 투입기관 14곳에 대한 매각계획이 발표될 예정이어서 산업은행, 기업은행을 포함한 대형 민영화 매물들이 쏟아지는 상황을 감안한 대책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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